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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커피믹스 한 봉지를 뜯어 뜨거운 물에 타면서, 이게 전쟁터에서 태어난 물건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통조림이든 트렌치코트든, 지금 우리 곁에 너무 당연하게 있는 것들이 사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환경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은, 알고 나면 일상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집니다.

통조림과 스팸이 참호에서 태어난 이유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Trench Warfare)은 군인들에게 식량 문제를 심각하게 안겨줬습니다. 참호란 적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땅을 길게 파서 만든 방어 진지를 말합니다. 이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는 불을 피워 요리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었고, 쥐떼가 식량을 갉아먹는 일도 빈번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이 바로 통조림 캔입니다. 통조림의 원형은 나폴레옹 전쟁 시기의 병조림(Bottling)으로, 채소를 유리병에 담아 코르크로 막아 보존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여기서 병조림이란 식품을 용기에 밀봉하고 열처리해 장기 보존하는 기술을 뜻합니다. 하지만 이동 중 깨지는 문제가 반복되자, 영국의 한 상인이 유리 대신 금속 캔을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냈고 이것이 오늘날의 통조림으로 발전했습니다.

제1차 대전 당시 영국군에게 보급된 콘드 비프(Corned Beef), 즉 소고기 통조림은 염분이 과하게 들어가 맛은 형편없었다고 합니다. 맛없는 전투식량에 지친 군인들의 불만에 대응하기 위해 조미료를 첨가해 만든 것이 세계 최초의 양념 햄 통조림, 바로 스팸(SPAM)입니다. 스팸이라는 이름은 '스파이스드 햄(Spiced Ham)', 즉 양념된 햄을 줄인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1937년 공식 출시된 스팸은 2년 뒤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연합군의 핵심 전투식량이 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대중적인 식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불편함이 발명을 만든다는 말이 여기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저도 살면서 불편한 것들을 메모해두는 습관이 있는데, 20년 전 키우던 강아지가 아파서 동물병원에 갔을 때 한 번에 30만 원 이상 나오는 걸 보며 막연하게 '애견보험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지금은 실제 상품으로 나와 있더군요.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않았던 스스로가 조금 아쉬웠습니다.

트렌치코트, 버버리가 전쟁터에서 만든 이유

비가 쏟아지는 날 트렌치코트를 꺼내 입을 때, 이 옷이 진흙탕 참호에서 살아남기 위해 설계된 군복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클래식한 패션 아이템으로만 봤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절정에 달했던 1916~1917년, 벨기에 보름 지역의 강우량은 3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출처: 영국 국립기록원). 참호 안은 차가운 흙탕물로 가득 찼고, 당시 군인들이 입던 양모(Wool) 소재 외투는 한번 비에 젖으면 무게가 약 26kg까지 불어났습니다. 기동성이 치명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국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버버리(Burberry)에 새로운 전투용 외투 개발을 의뢰했습니다. 버버리의 창립자 토마스 버버리는 1879년 이미 게버딘(Gabardine)이라는 독자적인 방수 원단을 개발해 둔 상태였습니다. 여기서 게버딘이란 면이나 양모 섬유를 촘촘하게 능직으로 짜서 발수성(撥水性, 물을 튕겨내는 성질)을 높인 원단을 말합니다. 이 원단으로 만들어진 것이 트렌치코트입니다.

트렌치코트의 디자인 요소들은 모두 전투 기능에서 비롯됐습니다. 단순히 패션이 아니었던 것이죠.

  • 견장(Epaulette): 어깨 위 장식으로, 원래는 계급장이나 호루라기를 고정하기 위한 용도였습니다.
  • 건플랩(Gun Flap): 가슴 한쪽에 덧댄 천으로, 소총을 겨눌 때 빗물이 코트 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았습니다. 주로 오른쪽에만 있는 이유는 군인 대부분이 오른손잡이였기 때문입니다.
  • D링 벨트: 수류탄이나 군용 장비를 걸기 위한 고리였습니다.
  • 벨트 자체: 전투 중 부상 시 지혈대(Tourniquet)로 사용됐습니다. 지혈대란 출혈 부위 위쪽을 강하게 묶어 혈류를 차단하는 응급처치 도구입니다.

전쟁이 끝난 뒤 이 코트가 패션 아이템으로 바뀐 계기는 할리우드였습니다. 카사블랑카 같은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트렌치코트를 입고 등장하면서 폭발적인 유행이 시작됐습니다. 기능복이 패션이 된 드문 사례입니다.

손목시계와 인스턴트커피, 전쟁이 만든 일상의 표준

지금은 남녀 구분 없이 차는 손목시계가, 한때는 "남자가 손목시계를 차느니 차라리 치마를 입겠다"는 말까지 나왔던 '여성 액세서리'였다는 사실을 알면 좀 웃깁니다. 그 인식을 바꾼 것도 전쟁이었습니다.

참호전에서는 포격 개시 시각에 맞춰 일제히 돌격하는 전술이 자주 쓰였습니다. 그런데 총알이 날아다니는 상황에서 호주머니에서 회중시계(Pocket Watch)를 꺼내 시간을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회중시계란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방식의 구형 휴대용 시계를 말합니다. 시간 확인 실패로 작전이 어긋나는 일이 반복되자, 영국 정부는 1917년부터 군인들에게 손목시계를 공식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흐름을 놓치지 않은 것이 오메가(Omega)였습니다. 오메가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왕립 공군과 육군의 공식 군용시계 납품업체로 선정되면서 손목시계 브랜드의 대명사로 급부상했습니다(출처: 오메가 공식 브랜드 아카이브). 까르띠에(Cartier)의 탱크(Tank) 모델도 마찬가지로, 르노사가 개발한 탱크를 위에서 내려다본 형태를 디자인 모티브로 삼은 시계입니다.

인스턴트 커피도 같은 맥락입니다. 전쟁터에서 커피는 체온 유지와 각성 효과를 위해 수요가 높은 기호품이었지만, 미리 갈아둔 원두가루는 산화(Oxidation)가 빠르게 진행되어 맛이 변질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산화란 공기 중 산소와 반응해 물질의 성질이 변하는 현상으로, 커피의 경우 풍미가 급격히 떨어지게 됩니다. 일본계 미국인 과학자 사토리 카토가 1901년 원두를 볶고 곱게 갈아 물로 우려낸 뒤 다시 건조시켜 분말화하는 방식으로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커피를 개발했습니다.

이 기술이 대량 생산으로 이어진 계기가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1918년 10월 기준, 미군은 하루 약 34만 kg의 원두를 로스팅하고 매일 약 17,000 kg의 인스턴트 커피를 소비했습니다. 전쟁 이후 네스카페(Nescafé)와 맥스웰 하우스(Maxwell House)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들었고, 1976년 맥스웰 하우스가 국내 기업과 협업해 설탕과 프림을 함께 넣은 커피믹스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습니다. 지금의 K-커피 문화가 여기서 시작된 셈입니다.

AI를 이용해 불편함 메모를 토대로 발명 아이디어를 구체화해본 적이 있는데, 아직까지는 제대로 된 상품 수준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질문 방식이 잘못된 것인지, 아직 발명 영역에서 최적화가 덜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발명 구현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발명은 극한의 불편함에서 시작됩니다. 전쟁이라는 끔찍한 배경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고 아쉽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은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창의적인 해법을 낸다는 사실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저도 일상의 작은 불편함을 흘려보내지 않고 꾸준히 기록하는 습관을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했습니다.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실행까지 이어지는 것이 핵심이라는 걸 20년 전 애견보험 에피소드가 다시 한번 일깨워줬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5yqU2giFdsY